여적

주먹밥과 도시락

손동우 논설위원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 영양을 섭취하는 단순한 행위이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식탁에 마주 앉거나 둘러 앉은 사람들끼리 서로의 생각과 견해를 나누고, 정서적 공감을 교환하며,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식구(食口)’라는 말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가족은 곧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인 셈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함께 밥을 나누는 행위’가 가장 극적으로 표출됐다. 신군부와 관제언론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이 날뛰고 있다’며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된 이곳에서는 ‘주먹밥을 통한 연대’가 이뤄지고 있었다. 공수부대의 잔혹한 진압에 맞서 시민군이 등장했고, 금남로 주변 대인시장과 양동시장 등 재래시장 상인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머니들은 처음에는 겁도 났지만 시장 골목에 솥을 걸고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든 뒤 모두 자식 같고 동생 같은 시민군에게 전했다. 이 따뜻한 연대의 주먹밥을 먹은 시민군들은 용감하게 항전하다가 꽃잎처럼 스러져갔다. 그때 이후 주먹밥은 5월 광주 또는 광주정신의 상징이 됐다.

‘연대의 주먹밥’이라는 빛나는 전통을 지니고 있는 광주시민들이 이번에는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에게 ‘연대의 도시락’을 전달했다고 한다. 24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한 세번째 재판 방청을 마치고 안산으로 돌아가려는 유족 70여명은 ‘광주시민 상주 모임’ 회원들로부터 간식이 든 도시락 100여개를 받았다. 가래떡, 귤, 초콜릿이 담긴 도시락 덮개에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리본이 붙어 있었다.

10개 마을 학부모, 자영업자, 문화예술인, 대학생 등 100여명의 광주 시민들은 ‘3년상을 치르듯 적어도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족들과 연대하자’는 취지로 이 모임을 결성했는데 지난 17일 두번째 재판이 끝난 뒤 즉석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유족들에게 전한 바 있다. 광주시민들이 앞장서서 지핀 아름다운 연대의 불꽃이 우리 사회 전역에서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