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육 전쟁에 치이는 부모들의 아우성 들리는가

2015.12.03 20:56 입력 2015.12.03 21:05 수정

어제 경향신문에 서울 한 공립유치원의 신입 원아 추첨 현장 사진이 실렸다. 당첨된 여성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는 모습이다. 다른 응모자들도 웃고는 있지만 표정에서 초조함과 씁쓸함, 심란함이 드러난다. 3세 아이의 엄마인 경향신문 기자는 이 기사에서 추첨 도전 경험을 전했다. 작전하듯이 온 가족이 동원돼 유치원 3곳에 지원한 끝에 겨우 한 곳에서 당첨됐다고 한다. 무려 13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것이다.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힘드니 내 자식에게는 아이 낳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는 말이 아프게 와 닿는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수십대 1의 경쟁을 치러야 하는 것은 한국만의 풍경일 것이다. 매년 이맘때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홍역을 치른다. 어린이집이나 사립유치원보다 형편이 좋은 국공립 유치원의 문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어린이집 예산을 시·도 교육청에 떠넘기겠다고 압박하자 불안해진 학부모들이 몰리면서 경쟁은 더 심해졌다. 국공립 유치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사립유치원에 지원해야 하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다시 어린이집 문을 두드려야 한다. 아이 키우는 일이 전쟁이나 다름없는 이런 풍경은 한국이 왜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3~5살 무상보육인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한 푼도 부담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겨우 3000억원을 책정했다. 누리과정 전체 예산이 2조1000억원이니 나머지 1조8000억원은 시·도 교육청이 알아서 조달하라는 식이다. 시·도 교육청들은 자체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채 맞서고 있다. 이대로 가면 ‘보육대란’이 불가피하다.

중앙정부와 시·도 교육청 간 누리과정 예산 떠넘기기 다툼은 이 정부 들어 시작됐다. 이전에는 전부 중앙정부가 부담하던 것을 갑자기 시·도 교육청에 떠넘긴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의 ‘0~5세 보육 국가완전책임제’ 대선공약과 정면 배치된다. 표를 얻기 위해 일시 헛공약을 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관리감독을 맡고 있다. 권한은 중앙정부가 갖고 운영 비용은 시·도 교육청이 내라는 것은 공정한 처사가 아니다.

무상보육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핵심 과제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사회참여 활성화를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국가의 미래를 가름하는 막중한 사안이다. 그러니 보육전쟁에 치이는 한국 부모들의 아우성을 개인의 하소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정부의 책무를 방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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