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이하 ‘지순협 대안대학’)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5년 1월 오픈을 목표로 현재 한창 입학생 모집이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두 차례의 입학설명회를 진행하였고, 여러 자리에 참석하여 ‘지순협 대안대학’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들었던 질문이 있다. 왜 대안대학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과, 졸업 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와 관련된, 즉 ‘진로’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지면을 통하여 이에 대해 간략하게 답해보고자 한다.

왜 대안대학이 필요한가?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하고 있는 편이다. 이는 현재 대학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진리와 앎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복잡한 자연의 이치와 사회적 체계들을 학습하고 분석하며, 이를 성찰하는 주체적인 관점을 체득하는, 소위 ‘진리의 전당’으로 생각되어지는 대학이 더 이상 그 관념적 위상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차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적으로는 대학의 목적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진리와 앎에 대한 고민을 강조하지 않으며, 오로지 ‘취업’과 ‘일자리’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학과들의 통폐합과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으며, 특히 인문계열이나 예술계열 등 일반적으로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진 학과들은 이러한 구조조정의 칼날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아울러 대학 자체가 기업화되면서 하나의 ‘수익모델’이 되어가고 있거나, 거대 사학재단이 일방적으로 대학을 사유화시키며 대학의 공공적 목적이 더 이상 자리 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학생들의 성적에서부터 교수들의 논문에 이르기까지 경쟁과 시장논리가 체계적으로 내재화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대학에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안 가자니 불안하지만, 막상 가면 배울 것이 없는 이상한 공간이 바로 한국의 ‘대학’이다.

물론 여전히 입시를 중심으로 하는 학벌체제는 공고하기에 대학의 위상 자체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벌체제도 마찬가지로 대학 자체의 거대한 양극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며, 그것 자체가 대학의 위기를 설명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입시라는 거대한 생존경쟁의 경험은 ‘대학생’들을 스스로 차별에 찬성하는 경쟁적 주체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 현재 대학의 위기를 바라보는 두 번째 차원이다.

오찬호의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찬성’한다. 그 이유는 정규직은 노력에 대한 당연한 결과와도 같은 것이며, 결국 비정규직이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규직보다 노력을 ‘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에 대한 평가는 특정한 점수로 표현되며, 그것의 원형은 ‘수능 점수’다.

수능 점수와 대학의 간판은 일종의 현대판 주홍글씨처럼 작용하며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수능 점수는 사람에 대한 차별의 근거를 제공해주며, 결국 나보다 수능을 ‘잘’ 본 사람과 ‘못’ 본 사람을 계속 구분하도록 만든다. 즉 전자에게는 차별을 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반면, 후자에게는 그만큼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보상적 심리가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별짓기에는 사회적 맥락이 철저하게 망각되고 있다.

즉 한 개인의 ‘노력’ 여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정당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 개인이 속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환경에 대한 고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경쟁을 내면화한 주체화 과정이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을 거쳐 대학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대학 자체의 기업화·사유화 과정과 서로 조응하며 현재 대학의 위기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순협 대안대학’은 이러한 대학의 위기를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대학의 기능을 단순하게 보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또 다른 질문, 즉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대안대학’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그만큼 대안적 사회와 대안적 삶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졸, 대졸, 취업, 결혼 등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규칙적인 생애 주기적 설계가 더 이상 불가능해진 혼돈과 불안의 시대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다른 삶을 기획할 필요성과 절실하게 마주하고 있다.그렇다면 그러한 삶을 때로는 스스로, 때로는 여럿이 함께 협력하며 기획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와 환경을 마련하며, 이러한 삶을 실천하기 위한 지식을 습득하며 역능을 키우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이를 위해서는 특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배울 수 있는 용기,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타자와 공감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그것이다. ‘지순협 대안대학’은 안정적인 취업을 알선해주는 직업훈련원 같은 곳이 아니다. 아울러 ‘이것이 대안적 삶이다!’라고 섣부르게 정의내리거나 강조할 생각도 전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다양한 분야들의 지식을 골고루 습득하며 토론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공감의 능력을 키우며, 이를 통해 나를 바꾸고 사회도 바꿀 수 있는 대안적인 교육공동체가 되고자 한다. 이것이 왜 대안대학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이다.

현재 ‘지순협 대안대학’은 은평구 녹번동에 보금자리를 틀고 새 식구를 맞을 준비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비록 30~40명 정도의 소규모로 진행되지만, 이러한 작은 움직임이 현재의 경쟁적 사회와 교육의 현장에 큰 울림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 중이다.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관련 문의는 www.freeuniv.net / 070-7778-7708.

이 글은 문화연대 뉴스레터 <문화빵> 53호(2014년 12월24일 발행)에 실렸습니다. 이곳을 누르시면 <문화빵>의 다른 콘텐츠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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