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왜 지금 판결했을까?

2014년 4월 24일 헌법재판소는 문화연대 등이 제출한 '청소년보호법' 제23조의3에 의거하여 심야시간대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이용금지 강제적 셧다운제가 위헌이라는 소송에 대하여 합헌으로 판결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합헌으로 2명이 위헌으로 판결을 내렸으니,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합헌이 된 것이다. 2년 5개월 만에 내려진 늦장 판결치고는 그 타이밍이 절묘했다. 예정된 일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에 따른 전 국민 애도의 기간에 이렇게 서둘러 판결을 내렸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정부의 규제개혁과 관련된 논의에서 게임규제가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채 서둘러 내려진 합헌 결정이 혹시 정치적 고려의 산물은 아닐까 우려된다. 헌재의 판결 시점과 판결문을 보면서 오로지 헌법의 정신에 위반되는지의 여부를 판결하는 헌재의 결정 과정에 정치적, 사회적 조건들이 아주 중요하게 개입되는구나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것도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개입 말이다.

▲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심야시간대에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접속을 막는 '셧다운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사진=연합뉴스)
헌재가 위헌 여부를 판결하는 최고이자 유일한 기관이니 이번 결정은 존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정을 존중하는 것과는 달리 그 합헌 결정이 과연 정당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초 문화연대에서 위헌요소를 제기했던 것은 이 규제가 헌법의 근본정신에 위반하는 가의 여부에 대한 것이었다. <강제적 셧다운제 위헌보고서>에서도 제기했듯이, 강제적 셧다운제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으로서 게임할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이고, 헌법이 제한의 조건으로 명시한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에 부합하는 제도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 문화연대의 위헌 소송의 근본 취지였다.

여성가족부 같은 헌법재판소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은 합헌의 근거로 검토해야할 이 두 가지 요소들에 대해 헌법 본래의 근본적인 정신에 입각해서 결정한 것인지 의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제적 셧다운제에서 ‘강제성’은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명백하고, 이 제도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의 조건과는 무관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결문은 합헌 결정의 의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강제적 셧다운제는 인터넷게임에 중독되거나 과몰입 증상을 보인 청소년이 자살하거나 모친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인터넷게임 중독 내지 과몰입 현상이 사회적으로 문제화되기 시작하자 이를 방지하려는 여러 제도적 조치 중 하나로 청소년보호법에 도입된 것이다. 제도의 시행 이후 헌법상 기본권 침해 여부를 둘러싼 논쟁 외에도, 제도의 실효성 측면이나 국내 인터넷게임 산업에 대한 위축 효과, 청소년에 대한 지나친 국가후견주의 내지 개인의 오락 및 여가활동에 대한 국가의 간섭과 개입이라는 관점에서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하여, 인터넷게임 자체는 유해한 것이 아니나, 우리나라 청소년의 높은 인터넷게임 이용률 및 중독성이 강한 인터넷게임의 특징 등을 고려할 때, 청소년의 건강과 인터넷게임의 중독을 예방하기 위하여,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이용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면서, 단지 16세 미만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심야시간대만 그 제공 및 이용을 금지하는 강제적 셧다운제가 청소년이나 그 부모, 인터넷게임 제공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로 과도한 규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헌재 스스로 인정하듯이, 게임과 관련된 중독 현상, 게임으로 인한 반사회적 사건에 대한 원인규명, 그에 따른 국가규제의 타당성 여부가 사회적 논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들은 객관적인 분석과 근거를 충분하게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가령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의 기준과 중독자 수 등에 대해 정확한 실태조사가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인터넷 중독을 측정하는 K-척도는 있지만, 인터넷 게임 중독을 판단하는 척도나 지표가 개발된 바가 없다. 그나마 K-척도도 이 척도를 개발한 정보문화진흥원에서 적절한 기준이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게임이 반사회적 사건의 주요 원인이라는 객관적인 근거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사건들의 원인은 복합적이라고 말한다.

헌재 스스로 게임과 둘러싼 문제들이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판결의 주된 근거라고 언급하는 게임중독 상황을 너무 자의적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가령 청소년 인터넷게임중독이 심각하다는 객관적 판단을 헌재가 할 수 있는가? 아니 헌재가 그런 판단을 하는 기관인가? “청소년의 건강과 인터넷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해”라는 주장을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가 주장하는 것이면 모르겠는데, 위헌을 판결하는 기관인 헌재가 합헌의 근거로 과연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가? 헌재의 판결문은 마치 여성가족부나 보건복지부의 주장과 흡사 일치해 보인다.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는 판단도 기본권의 관점에서 보면 강제적 차단에 따른 권리 침해의 심각함을 고려하지 않아 보이고, 설령 그것이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해도, 국가가 개인의 문화적 권리를 강제적으로 차단해도 상관없다는 것이 헌법의 근본정신인지도 의문이다.

▲ (사진=연합뉴스)
판단의 근거가 사실에 부합하는가?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강제적 셧다운제의 최소성 요건에 대한 판결이다. 판결문은 “게임산업법상 선택적 셧다운제는 그 이용률이 지극히 저조한 점 등에 비추어볼 때, 이 사건 금지조항의 대체수단이 되기에는 부족하므로 침해의 최소성 요건도 충족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강제적 셧다운제 역시 실효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또한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부가통신사업자로 신고하고 게임법상 등급분류를 받아 정상적인 방법으로 제공되는 인터넷게임물에 대해서는 그 제공업체가 국내 업체인지 해외 업체인지를 불문하고 이 사건 금지조항이 적용되므로, 일부 해외 서버를 통해 불법 유통되고 있는 게임물에 대하여 이 사건 금지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사실을 가지고 해외 업체에 비하여 국내 업체만 규율함으로써 평등권이 침해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지만, 해외 불법 유통 게임물만 아니라, 해외 합법적인 유통 게임물에 대해서도 이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게임이나 인터넷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30분, 아니 단 3분이라도 강제적인 차단이라면 위헌이 아닌가?

헌재가 합헌의 주요한 근거로 들고 있는 청소년 게임중독, 인터넷 게임의 특수성과 같은 문제들은 위헌 요소를 결정하는 데 부분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이지만, 결정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결정을 전문적으로 할 만큼 헌재의 재판관들이 게임과 인터넷 문화에 얼마나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헌재가 핵심적으로 판단할 것은 과도한 규제냐 아니냐가 아니라, 강제적 셧다운제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제인가의 여부에 있다. 과도한 규제는 위헌이고, 과도하지 않은 규제는 위헌이아니라는 판단이 과연 국민의 기본권의 여부를 판단하는 헌재의 타당한 결정이라 할 수 있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청소년이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문화적 권리를 단 30분, 아니 단 3분이라도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차단당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민의 구성원으로 부모들이 자녀들과의 충분한 상의 후에 게임의 이용 여부를 제한할 수 있는 권리가 국가에 의해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차단당한다면, 그것 역시 부모로서 국민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효성이 없는 강제적 셧다운제는 헌재가 걱정하는 일부 청소년 게임중독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헌재 재판관들 중에서 두 분이 바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신 것 같다. 두 분의 재판관은 “강제적 셧다운제는 전근대적이고 국가주의적이고 행정편의적인 발상에 기초한 것으로, 문화에 대한 자율성과 다양성 보장에 반하여 국가가 지나친 간섭과 개입을 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문화국가의 원리에 반한다”고 판결했다. 헌재가 결정한 합헌 판결이 비록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결정된 것이지만, 이 두 재판관의 판결은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의 지나친 규제와 간섭을 배제하는 헌법 본래의 정신을 잘 구현한 소중한 판결이다. 중요한 것은 합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강제적 셧다운제가 개인의 문화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국가가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이다.

합헌 결정도 문화적 권리 운동의 한 과정이다

강제적 셧다운제의 위헌 소송 운동을 주도한 한 사람으로서 이번 헌재의 판결이 아쉽고, 안타깝지만, 이 결정도 게임이용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문화적 권리와 자율성을 확장하는 운동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헌재의 판결은 게임 및 문화콘텐츠를 바라보는 다수 재판관들의 보수적인 관점과 일반 국민들의 보호주의적 관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렇기에 한편으로 게임과 같은 문화콘텐츠에 대한 문화적 가치와 효용성에 대한 사회적 설득과 공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게임을 만드는 기업도 이에 대한 윤리적, 문화적 책임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절망스러운 판결 가운데, 그래도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판결문 결정의 의의에 “인터넷게임 자체는 유해한 것이 아니”라고 그나마 판단했다는 점이다. 이는 인터넷 게임은 그 자체로 중독물질이 아니라는 판단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맞닥트려야 할 게임중독법 발의안을 포함한 게임에 관한 각종 규제법들과의 싸움에서 이번 헌재의 판결이 재해석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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