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직격탄’ 사우디, 초긴축…휘발유값 67%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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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재정적자 114조원 ‘건국 이래 최대’
기름값 인상·보조금 축소 ‘이례적’
내년 예산, 올해보다 14% 줄여
공공요금 인상·부가세 신설 검토
다른 산유국서도 긴축 나설 조짐


대표적인 산유 부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상 최대 폭의 재정적자를 기록하자, 국내 휘발유값 67% 인상을 포함한 긴축안을 내놓았다.

사우디 정부는 28일부터 유류 보조금을 축소해 보통 품질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0.45리얄(140원)에서 0.75리얄(234원)로 67% 올린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전했다. 고품질 휘발유 가격도 0.6리얄(187원)에서 0.9리얄(280원)로 50% 인상한다. 세계적 기준에서 보자면 여전히 싼 편이지만, 사우디에선 기름값 인상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사우디가 휘발유 값을 올린 계기는 올해 재정적자가 1932년 건국 이후 8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재정 형편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사우디 재무부는 28일 누리집에 올린 성명에서 올해 재정적자가 3670억리얄(114조338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의 15%에 이르는 액수다. 근본적 원인은 국제적인 저유가에 있다. 사우디는 정부 수입의 90% 가까이를 석유 판매에 의존하는데, 국제 유가는 지난해 초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최근에는 30달러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사우디를 포함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생산량을 줄일 계획이 없는데다가, 이란이 서방의 경제제재가 풀리는 대로 원유 생산량을 지금보다 하루 200만배럴 늘릴 예정이라 앞으로 유가는 더 떨어질 확률이 크다.

사우디의 올해 정부 수입은 지난해보다 42%나 줄었는데, 지출은 6.6%밖에 줄지 않았다. 사우디 정부는 올해 예멘 내전 개입 등으로 방위비 등에 추가로 200억리얄(6조2310억원)을 쓰고, 살만 국왕이 즉위하면서 공무원 급여를 올려주는데 880억리얄(27조4164억원)을 지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9월 사우디가 지출을 통제하지 못하면 5년 안에 외환보유액을 모두 탕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우디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14% 줄인 8400억리얄(261조7860억원)로 책정했으며, 재정적자는 약 3262억리얄(101조6276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전기와 물, 디젤, 등유 가격도 오를 듯보인다. 사우디 정부가 전기 등에 지급하는 보조금도 줄일 계획이라고 관영 <에스피에이>(SPA) 통신은 전했다. 또 사우디 정부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부가가치세 도입을 검토하겠다고도 밝혔다. 사우디 정부가 부가세 도입 이후에는 소득세도 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사우디가 재정 부담을 이기지 못해 리얄 환율을 달러당 3.75리얄에 고정하는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것이라는 예측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사우디 정부의 긴축 기조는 이전부터 어느 정도 감지됐던 일이다. 알리 나이미 석유장관은 지난 10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에너지 관련 회의에서 “모든 가격은 오르게 돼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기자들이 “(휘발유 값 인상에 대해) 검토하고 있느냐?”고 묻자, 나이미 장관은 “그렇다”고 답하며, 휘발유 값 인상 가능성을 내비친 적이 있다.

긴축 기조는 사우디뿐만 아니라 다른 산유국들에서도 감지된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재정난 때문에 지난 8월부터 유류 보조금을 폐지하고, 휘발유 값 인상을 용인했다. 부가세 도입 방침도 사우디 등 걸프 지역 6개 산유국의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가 이달 초 합의한 내용이다. 미국에서 가장 세금이 적은 알래스카주의 주지사는 최근 저유가로 세수에 구멍이 생겼다며 35년 만에 처음으로 소득세를 걷자고 제의하고 나서기도 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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