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日언론, 2년간 납치감금당 여중생에 “왜 도망치지 못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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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3.30. 오후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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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여중생 납치ㆍ감금 사건으로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일본 언론은 연신 “왜 학생은 그동안 도망치지 못했는가”, “왜 주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가”고 보도해 비난을 사고 있다. 범인의 동기과 책임을 규명하기보단 피해자의 잘못을 질책하는 모양새다.

지난 27일 일본 지바(千葉) 국립대학교 재학생 데라우치(寺內ㆍ23)에게 2년 간 납치ㆍ감금됐던 여중생이 탈출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피해자는 데라우치가 집을 비운 사이 탈출했다고 진술했다. 




데라우치의 신병이 확보된 28일 산케이(産經)신문은 “여중생은 물리적으로 도망갈 수 없을 정도로 엄중감금된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여학생은 왜 2년동안 도망칠 수 없었던 것일까”라며 가해자의 감금방법, 집 벽의 두께, 방의 배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어 “약간의 소리가 들렸어도 주변에서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범인이 치밀하게 도망을 막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지만, 피해자가 도망칠 수 없었던 이유를 해명하는 데 집중했다. 같은 계열사의 후지테레비는 29일 수사 경찰를 취재하면서 피해자가 새삼 ‘도망친 이유’를 물었다. 도쿄(東京)스포츠는 30일 기사를 통해 “왜 도망치지 않았는가!?”라며 “도망 기회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학생은 탈출을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피해자를 질책했다. 경찰과의 취재를 통해 피해자가 느꼈을 불안과 위험을 설명했지만, 매체는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고 마무리했다. 온라인 매체 J-Cast도 30일 피해자가 감금당한 방에서 큰소리로 외쳤다면 조기에 구출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매체는 데라우치의 집을 수차례 방문한 전력회사 직원이 “피해자가 큰소리를 냈다면 옆방이나 외부에서 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잘못은 가해자가 했는데, 피해 책임은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꼴이다. 무사시(武) 대학의 사다 유키(千田 有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 언론들이 가해자가 되어 또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납치 피해자에게 “그동안 왜 도망치지 못했냐”는 질문은 살해 피해자에게 “살해당하기 전 왜 도망치지 못했냐”고 질문하는 것과 같다. 피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수는 “이런 류의 보도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호기심을 자극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보도를 본 또 다른 피해자들은 비난이 무서워 도망갈 용기를 잃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피해 학생은 현재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있다.

NHK 방송은 데라우치가 자신의 방에 피해 학생을 가두고 “너는 버려졌다”, “아무도 너를 찾고 있지 않는다”고 세뇌시킨 정황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데라우치는 피해자를 납치한 지 9일 만에 피해자의 집에 “채팅에서 만난 남자와 함께 있으니 찾지 말라”는 편지를 보내는 등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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