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중단 ‘웰다잉法’ 국회 통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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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존엄한 죽음’ 선택할수 있다
웰다잉法 국회통과… 2018년 시행
회생 가능성 없고 사망 임박 환자… 가족 전원과 의사 2명 동의 필수
존엄사 논란 18년만에 법 제정… 악용 막을 가이드라인 마련 과제

《 생의 마지막 길을 스스로 결정할 길이 열렸다.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웰다잉(well-dying)’ 법안이 8일 국회를 통과해 2018년부터 시행된다. 회생 가능성이 없거나 사망이 임박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멈출 수 없어 환자나 가족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끝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종교계 등의 지적도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 단계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한 이른바 ‘웰다잉(well-dying)’ 법안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무의미한 연명(延命) 행위를 끝내고 ‘품격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연명의료를 중단한 의사를 살인방조죄로 처벌했던 1997년 12월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18년 만에 합법적 대안이 마련된 셈이다. 의학계와 시민사회의 차분한 환영 분위기 속에 남은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 갈지 주목된다.

○ 생의 마지막, 내가 결정한다

국회는 이날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잇달아 열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웰다잉법)’을 통과시켰다. 의원 203명이 표결에 참여해 202명 찬성, 1명 기권의 압도적 지지 속에 통과됐다.

웰다잉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해 있고 △치료해도 회복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네 가지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부터 시행된다.

말기 및 임종 단계의 환자가 주치의와 함께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연명의료계획서(POLST)를 작성하면 된다. 당장 건강에 문제가 없는 만 19세 이상 성인도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 중단을 희망한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를 작성해 이를 주치의에게 확인받아 놓으면 된다.

본인의 연명의료계획서가 없어도 가족과 의료진의 판단으로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 환자 가족 전원이 연명의료를 안 받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의사 2명이 이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가족이 없는 환자는 의료기관의 내·외부 전문가 5명 이상으로 구성되는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하면 연명의료를 끊을 수 있다. 윤리위원회는 종교계, 법조계, 윤리학계, 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비(非)의료인 위원을 2명 이상 포함해야 한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환자에게 영양과 수분, 산소 공급은 계속된다. 의사가 중단 대상이 아닌 환자에게 중단 결정을 내렸거나 환자 가족이 거짓 진술을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보건복지부 장관 산하에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설치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및 관리, 연명의료 결정 현황 조사 및 연구 등 업무를 맡게 된다.

○ ‘죽음 결정권’ 악용 소지 없애야

오랜 진통 끝에 웰다잉법이 제정됐다는 소식에 의료계 및 환자의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끝낼 수 있게 됐다”며 조용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현재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3만여 명. 이로 인한 본인 및 가족의 고통도 가중돼 왔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90%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놓은 노인은 물론이고 젊은이들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대 법의학과 이윤성 교수(대한의학회장)는 “과거에는 불치병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경우도 많았다”며 “연명의료의 기준이 제시된 만큼 이제 국민들이 죽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해 볼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법은 통과됐지만 실제 시행 과정에서 점검해야 할 여러 과제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생 가능성이나 임종기 여부를 놓고 오판할 가능성도 있다. 생명윤리를 중시하는 종교계의 거부감 역시 강하게 남아 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본인의 결정이 아닌 가족이나 제3자의 대리 동의를 허용한 것은 환자의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한의학계의 움직임도 지켜볼 부분이다. 일부 한의학계에서는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담당 의사에 한의사도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해 왔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유근형·임현석 기자
#연명의료#웰다잉법#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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