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치열함과 덧없음' 세상 이치 꿰뚫은 사상가
벽에 붙은 '참'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인상적인 단체사진이다. 그걸 빼면 특별한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한자로 쓴 2만 2천이란 숫자가 눈에 띈다. 1950년 6월 6일 서울 YMCA에서 주최한 다석 류영모 선생의 기념 강연회 때 찍은 사진이다. 맨 아랫줄 가운데 한복 입은 이가 다석이고, 왼쪽에서 네 번째가 그를 하늘 같은 스승으로 섬겼던 함석헌이다.
이날은 류영모의 환갑잔치를 대신해 지인들이 거의 반강제로 마련한 기념 강연회였다. 생일잔치도 하지 않던 류영모였으니 환갑잔치라고 할 리가 없었다. 류영모의 환갑은 그해 3월 13일이었다. 류영모는 환갑잔치의 빌미를 아예 주지 않으려고, 환갑 전날 집을 비우고 천안의 두메산골로 내려갔다. 자신이 집에 있으면 친척들이 찾아와 잔치를 벌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일 그는 환갑잔치를 이리 말했다. "음식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것은 산 이 대접이 아니라 죽은 이 대접입니다."
류영모는 나이를 햇수로 세지 않고 하루하루 날수로 셌다. 하루를 일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루 한 끼 저녁만 먹었다. 환갑 기념사진에 2만 2천 석(夕)이라 적은 이유일 터. 그는 산 날수를 세는 것도 모자라 숨 쉬는 호흡까지 셌다. "숨을 들이쉬는 것이 사는 것이고, 숨을 내쉬는 것이 죽는 것이라면 결국 일생 9억 번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것이지 그밖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숫자 하나에도 치열함과 덧없음의 철학이 숨어 있다.
다석 전기 / 박영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