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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공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 온 뒤 작은 강박증 비슷한 것이 생겼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미국에서 총기 사망은 교통사고 사망만큼 흔한 일이다. 학교에 간 아이들이, 외출한 아내가 당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경찰로부터 날아올지 모를 총알도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 총기규제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고, 미국인들은 타인의 총기의 공포를 본인의 총기 소지로 극복하거나 그냥 팔자로 여기며 산다.

[특파원칼럼]강한 공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미 법무부 산하 술·담배·총기·폭발물 담당국은 시중에 풀린 총이 3억정 이상이라고 추산한다. 대부분은 각자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보관돼 있겠지만 종종 총기함 밖을 나와 무고한 시민을 살상하고 심지어 공권력을 향하기도 한다. 지난해 법 집행 과정에서 총에 맞아 숨진 미국 경찰관은 47명이다.

엉뚱한 상상 하나. 그 많은 총들이 각자의 보관함 밖으로 나와 일부러 공권력을 겨냥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대부분 미국시민들은 공권력을 존중하도록 시민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내전 상황이 아닌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에게 6발 이상의 총을 맞아 숨진 뒤 이 지역은 연일 폭력시위가 이어졌지만, 시위대는 총 든 경찰을 향해 총을 겨누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뉴욕에서 제복 입은 경찰관 두 명이 한 흑인 남성의 총에 맞아 숨진 일은 어떤 징후적 사건 같다. 이 남성은 범행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경찰을 ‘돼지’로 칭하며 최근 경찰의 과잉진압에 숨진 흑인들 이름을 쓰고 ‘경찰이 한 명을 죽이면 우리는 두 명을 죽인다’고 했다. 2008년 15세 소년이 경찰에 사살된 그리스에서 시위대가 ‘경찰 한 명을 죽일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겠다’며 폭력시위를 벌인 것과 비슷했다. 뉴욕 경찰을 죽인 사람은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공권력에 대한 보복 총격의 충격은 컸다. 확산일로에 있던 인종차별적 법 집행 반대 시위가 급격히 잦아들었다.

뉴욕 경찰은 이 사건 이후 파업에 가까운 명령 불복종을 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불공정한 법집행으로 지탄받던 경찰들은 숨진 경찰의 장례식 때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으로부터 등을 돌리는가 하면, 최근 2주간 예년의 10분의 1도 안되는 범죄 검거와 교통위반 단속을 하고 있다. 이는 경찰의 불심검문 관행을 종식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시장에 당선돼 경찰개혁을 추진 중인 드블라지오 시장에 대한 항의이다. 이는 곧 드블라지오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시민들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경찰과 시민 사이의 불신은 좀처럼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한국에서 집회나 노조파업 때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면 ‘공권력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탄식 뒤에 ‘미국처럼 강한 공권력을 가진 나라를 본받자’는 얘기가 으레 따라나온다. 이제는 그런 얘기도 설득력이 떨어질 것 같다. 미국 공권력의 권위는 엄정함이나 공정성보다 상당 부분 언제든 발포할 수 있는 총의 힘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흑인차별 문제를 고리로 터져나온 미국 공권력의 문제점은 그 권위가 과연 얼마나 시민들의 존중을 받는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

아울러 경찰 대 시민의 대결 구도는 사태의 본질을 흐린다. 1980년 12월24일 사형된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을 떠올려보자. 무등산 중턱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살았던 박흥숙은 도시 미관을 위한다며 막무가내로 집을 불태운 시 철거반원들을 망치로 때려 살해한 죄였다. 사형당한 박흥숙만큼이나 사망한 철거반원들 역시 평범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뉴욕의 숨진 경찰도 모두 중국계, 라틴계 이민자 출신들로 결코 미국 사회의 기득권층과 거리가 멀다.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고 불철주야 일하는 공권력은 과연 누구의 무엇을 보호하려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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