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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기득권, 나쁜 기득권

입력
2014.06.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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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해미의 작업실 수연재(樹然齋)는 읍성 근처에 있어 틈나는 대로 성 밖으로 한 바퀴 돌고 성 안으로 산책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요즘은 어르신들이 카메라를 메고 출사(出寫)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카메라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도 보기 좋거니와 어르신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피사체를 담아내는 진지하고 뿌듯한 표정은 무엇보다 정겹다. 디지털 카메라 덕택이다. 예전 기계식 카메라에 비해 가벼우니 들고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다. 그러나 가장 큰 건 비싼 필름 값, 인화비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성 덕택일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건 코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필름 카메라에 대한 자신들의 지분에 미련을 가졌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궤멸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기득권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빚어낸 비극들이다. 기득권이란 법률적으로는 ‘특정한 자연인 또는 법인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법규에 의하여 얻은 권리’를 의미한다. 그것의 연원은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의 제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권력과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 혹은 적법ㆍ위법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들은 법을 만들거나, 입맛대로 기소하고 판결을 내리며 친분을 중시하는 초법적 권리를 남용하고 과거에 불법적으로 부를 쌓았어도 더 이상 책임을 묻거나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사람들이다. 특권층이나 귀족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 혹은 국가의 룰 자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을 의미하는 기득권은 분명 비난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문제를 건드리면 벌컥 화를 내며 진영 논리에 빠졌다고, 좌파니 종북이니 하는 딱지를 붙인다.

지난 보름 동안 우리는 문창극 사태를 통해 그런 기득권의 민낯을 똑바로 보았다. 모든 것을 자신들의 프레임 속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며 변명과 발뺌에는 능굴능신(能屈能伸)한 모습이다. 제대로 된 기득권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경계하고 도려내야 할 기득권은 이렇다. 1997년을 계기로 우리는 더 이상 패스트 무빙(fast moving) 프레임으로는 미래를 발전시킬 수 없음을 알았다. 그 틀에서는 인간의 가치가 무시되고 오로지 효용의 부품으로만 여겨졌다. 우리의 미래는 퍼스트 무빙(first moving)의 프레임에 달렸다. 거기에는 인간의 가치와 주체성, 그리고 인격적 연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낡은 틀을 고수하는 자들이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 틀 속에서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구조로 가는 데 따른 위험부담이나 투자보다 기존의 틀에서 더 쥐어짜면 아직도 남은 끝물을 마저 빨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건 시대착오일 뿐 아니라 사람과 사회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이 자들은 그 끝물까지 빨아먹고 나면 그대로 걷어차고 튀면 그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매달려 살던 이들은 그대로 용도 폐기된다. 이게 경계해야 할 기득권이다.

모든 기득권이 나쁘다는 진영 논리는 협량하고 자신의 진정성까지 퇴색시킨다. 정당한 기득권에서 이런 비열하고 천박한 기득권 세력을 도려내야 한다. 그게 보수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며 진보의 희망을 마련하는 바탕이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진영 논리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소통과 협력의 신뢰를 마련할 수 있는 실마리이다. 그런데도 자꾸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이들을 보호하거나 분리해내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결국 껍데기와 쓰레기만 남게 될 것이다. 뭉뚱그려 판단할 게 아니다. 그게 바로 이전 사회에서 통하던 패스트 무빙 패러다임이다. 분리수거하듯, 악성 바이러스 같은 악성 기득권을 도려내야 한다.

읍성 안팎을 살피며 카메라 렌즈를 통해 사물과 자신의 관계를 새로운 눈으로 읽어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새삼 정겹다. 디지털 카메라가 가져다 준 선물을 누리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바가 새삼 소담하다. 부지런히 피어있는 벌개미취꽃이 바람을 타고 살랑댄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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