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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친일을 부인하는 사람들

입력
2014.06.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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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2005년 8월 친일인명사전 수록 인물 3,090명의 명단을 발표했을 때 해당 인사의 가족과, 그가 관련했던 기관들은 일제히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친일 행위가 명백한데도 그들은 한결같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창업주 혹은 창업주 가족이 친일 논란에 휩싸인 언론사는 선정 기준이 불합리하다거나 아니면 친일개념 자체가 불분명하다며 친일명단 공개가 잘못됐다고 공격했다. 그때 박남수 천도교 종의원 의장이 천도교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천도교 지도자였던 최린이 해방 후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형해 매국의 교훈으로 삼아달라”고 말한 사실까지 언급하며 천도교의 친일 행위를 사과했다. 친일인사 3,090명의 연고자 가운데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박 의장이 거의 유일했다. 일제의 침탈을 받던 식민시대에 동포를 전장으로 내몰고 항일운동가를 잡아들였으며 일본 체제를 찬양하고 그들에 빌붙어 이권을 챙긴 사람이 분명 적지 않은데 어찌된 일인지 친일을 인정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였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놓고도 적지 않은 사람이 친일 발언이라고 보았는데 당사자는 “친일이 아니다”고 극구 부인했다. 일본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며,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 게 우리 민족 DNA라고 한 것도 전체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맞섰다. 교회 강연을 내보낸 KBS 보도에 대해서는 발언의 일부만 떼어내 편집한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KBS 등의 보도에 대한 반감이 사무쳤는지 그는 후보자를 사퇴할 때 언론을 질책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명단을 발표할 때 펄쩍 잡아뗐던 언론들이 이번에는 그를 지원했다.

그가 친일 논란에 휩싸인 것이 교회 강연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신문 칼럼, 예를 들어 ‘나라의 위신을 지켜라’나 ‘수치의 옷을 이제는 벗자’같은 글에서 일본과의 과거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런 주장들이 쌓여 그의 역사 의식에 의문을 품게 했다.

더 큰 맥락은 박근혜 정부 들어 계속되는 뉴라이트 인사의 등용에서 짚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취임한 유영익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그리고 최근 취임한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은 모두 뉴라이트 인사들이다. 뉴라이트 인사들이 친일 문제와 관련해 구설에 오르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식민지근대화론 즉 일본의 식민지가 됐기 때문에 한국이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주장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 박효종 위원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9년 전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할 당시 친일인사 선정이 부당하다는 글을 신문에 싣는 등 강하게 반발한 전력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식민지근대화론에 공감하는 인사들을 중용해 논란이 되고 있는 마당에 총리 후보자까지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으니, 전체 맥락은 차치하고라도 친일 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고도 당사자가 친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2005년에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했던 것처럼 이 참에 친일문제를 다시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빠져있던 친일 인사를 찾아내고, 반대로 사실과 달리 친일로 의심받는 사람들의 억울함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줄곧 일본에 강경 태도를 견지해왔다.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노골화하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 등에 실망해 한일정상회담을 거부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3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중재를 거절할 수 없어 아베 총리와 한 차례 얼굴을 마주했을 뿐이다. 그런 대통령이 식민지근대화론에 경도된 인사들을 기용하고, 친일 의심을 살 수 있는 발언을 한 인물을 선택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친일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 그런 모순을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박광희 부국장 겸 문화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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