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 실패 심판받은 박 대통령, 아직 정신 못 차렸다

2016.04.18 20:17 입력 2016.04.18 20:20 수정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20대 총선 결과를 처음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선거의 결과는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고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도록 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20대 국회가 민생과 경제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길 기대하면서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총선 이후 닷새 만인 이날 박 대통령 언급은 형식이나 내용, 모든 면에서 시민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총선은 대통령이 임기 내 치르는 몇 안되는 큰 행사이다. 여기서 여권의 최고 책임자로서 심판을 받았다면 기자회견이든 성명이든 마땅히 시민 앞에 나서 직접 소회를 밝히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정작 박 대통령은 구중심처라는 청와대에 앉아 발언을 받아 적고 있는 비서들 앞에서 소감을 밝히는 것으로 갈음했다. 그러잖아도 박 대통령을 향해 ‘불통’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던 터다.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6분간 모두(冒頭) 발언을 했으나, 총선 결과와 관련된 언급은 43초에 불과했다. 고작 3문장이다. 그간 박 대통령이 틈만 나면 “국회 심판”을 거론하며 사실상 ‘야당 심판’을 촉구해왔던 것에 비하면 언급 회피와 다름 아니다. 선거 직전 12일 국무회의만 해도 박 대통령은 13분간 모두 발언을 하면서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의 문제를 제외하고 대부분 시간을 야당 공격에 할애한 바 있다. 또 박 대통령은 남의 말 하듯 간접화법을 썼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인지, 남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자신이 생각한다는 것인지 애매하다.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돌려 하는 태가 역력하다.

지도자의 의견 표명은 명확해야 한다. 두세 가지로 해석될 여지를 줘서는 안된다. 잘못 해석되면 국정에 혼란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날 ‘알아서 해석하라’는 식으로 화두를 던졌을 뿐이다.

내용은 더욱 실망스럽다. 진실된 사과나 반성은 없었고, 청와대 책임론도 비켜갔다. “겸허히”라는 단어로 당의(糖衣)처럼 포장했을 뿐 ‘마이 웨이’를 선언한 것이나 진배없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집권세력의 국정 실패에 매섭게 매질을 했다. 또 소위 “진실한 사람들”을 국회에 내리꽂으려고 ‘진박 패권’을 부리려다 벌어진 여당 막장 공천에 철퇴를 내렸다. 이런 정부와 여당의 정점에 선 이가 박 대통령이다. 자신을 포함한 집권세력의 잘못을 밝히고 사과해야 했다. 그런데 “국민의 민의”라는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갔다. 민의가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인식이 이러니 앞으로 시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국정 기조 변화를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실제 박 대통령은 국정 쇄신을 약속하기보다는 기존 정책을 고수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일자리 대책과 노동개혁의 현장 실천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쉬운 해고, 복지 축소, 서민 증세, 대기업 중심의 경제운용, 표현의 자유 억압과 남북 긴장 등 지난 3년간의 적폐는 지속될 판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오죽하면 새누리당에서도 “사과조차 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고개를 들겠나. 정권 말기, 그것도 여소야대에서 여당이 대통령의 방패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허망한 일은 없다. 결국 이대로라면 여야 모두 등을 돌리는 ‘조기 레임덕’ 상황만 기다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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