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대통령의 얼굴 내보내기 대작전

정원식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주관 방송사였던 KBS가 미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최대한 내보내기 위해 ‘동분서주’한 정황이 뒤늦게 알려졌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이진원 신부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이 신부는 교황 방한 마지막 일정이었던 18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중계 자문을 위해 당일 새벽 명동성당으로 가 중계차량에서 담당 피디와 방송준비를 했다. 이날 미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미사 시작 직전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교황 방한 중계팀 팀장이 중계차량에 들어와 직접 지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신부는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 팀장님이라는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방송이 시작되자 뒤에 서 계시던 그분은 매우 열심히 그분(박 대통령)을 잡기 위해 노력하셨고, 사실상 피디가 할 일을 뒤에 서계신 그분께서 모두 하셨습니다. 피디님과 제가 왜 있는지 모를 만큼 열심히 하셨습니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앉은 장소가 화면에 잘 나오기 힘든 장소였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앉은 자리는 미사를 공동집전하는 사제들의 자리여서 조명이 약했던 데다 교황과 주교 뒤에서 미사 집전을 돕는 복사들이 대통령의 얼굴을 가렸다.

중계를 하던 팀장은 전화를 받았다. 이 신부는 이 전화가 대통령이 화면에 제대로 잡히지 않자 누군가가 바로잡아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다행인지 전화가 오기 직전에 박 대통령의 얼굴이 화면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 신부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전화가 오자 팀장이 ‘방금 나갔습니다’라고 대답했다”며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팀장은 미사가 끝나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전화를 받았다. 팀장은 “(대통령 얼굴이) 6번 나갔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신부는 “대통령이 명동성당에 온다고 할 때부터 KBS가 대통령을 화면에 잡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옆에서 지켜보기에 좀 과도하다 싶을 정도였다”며 “안타깝게도 (대통령의 자리 배치 때문에) 화면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페이스북에 “방송을 담당했던 분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며 “팀장님은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라고 썼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특정인을 공격할 의도는 없다”며 “풍자적으로 쓴 글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이진원 신부의 페이스북 글 전문

지난 8월 18일 교황님께서 평화와 화해를 위해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실 때 저는 성당마당 내에 K본부 생중계차에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께서 미사에 참석하시는 것이 뒤늦게 결정되면서 티비 생중계가 뒤늦게 준비되었고, 생중계 차에서 전례와 관련된 화면 배치를 위한 자문(?)으로 급히 섭외되어 갔습니다. 당일 새벽부터 명동에 갔고, 피디님과 미리 대본을 보며 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 팀장님이라는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방송이 시작되자 뒤에 서계시던 그분은 매우 열심히 그분을 잡기 위해 노력하셨고, 사실상 피디가 할 일을 뒤에 서계신 그분께서 모두 하셨습니다. 피디님과 제가 왜 있는지 모를 만큼 그분께서 열심히 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화면을 보면, 그분이 시원하게 잡히지도 않았고, 얼굴도 어둡게 나왔습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 자리에 그분의 자리를 배정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 자리는 미사를 공동집전하는 사제들의 자리이기 때문에 조명이 매우 약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화면에 잡혀도 어두울 수 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물론 그 자리를 배정한 분은 교황님을 조금 넓게 잡을 때마다 그분이 같이 화면에 잡힐 수 있는 자리로 배정한 듯 싶습니다. 하지만 교황님이나 주교님 뒤에는 늘 주교복사가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배정했지만, 주교복사 때문에 그분이 화면에 가리거나 시원하게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 책임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초반부에는 화면에 나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팀장님께 전화를 오더군요. 다행히 전화받기 바로 직전에 화면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퇴장하시기 직전에 몇번 나갔는지 확인전화 하셨는데, 다행히 6번 나갔다가 대답하실 수 있었습니다.

퇴장하시면서 교황님과 그분께서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 역시 바티칸티비 카메라맨이 근접촬영을 하는 바람에 화면에 내보내지 못했습니다. 팀장님이 그 장면을 못낸다고 얼마나 안타까워하며 화를 냈는지 모릅니다.

최근 K본부 이사회 이사장님께서 사표를 내셨길래, 혹시 이 미사 건으로 사표를 내신건 아니가 싶어 이 글을 올립니다. 방송을 담당하셨던 분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오직 그 자리를 배정한 분들께 책임이 있습니다.

미사의 집전자에게 배정된 자리에, 냉담자도 아닌 개종자를, 주교님과 함께 어두운 자리에 앉도록 그 자리에 배정한 이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주교복사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그분을 앉게 한 사람들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팀장님은 정말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차라리 위안부 할머니들 뒷자리에 배정해서 할머니들과 함께 나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강정, 밀양, 쌍용차 주민들을 뒤로 보내지 말고, 그들과 함께 앉아있는 화면을 내보냈으면 어땠을까요. 그 자리는 조명도 좋은 자리였는데....

물론 이 방송 건 때문은 아니겠지만, 혹시라도 이 방송이 영향을 끼쳤다면, 그 책임은 모두 그 자리를 배정한 분들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차기 사장님으로는 그 팀장님을 추천합니다. 그분을 화면에 띄우기 위해 담당 피디 역할을, 그것도 미사시간 내내 서서, 미리 자리까지 답사하는 정성을 보이신 그 팀장님은 현 정부와 딱 맞는 사장님이 될 것 같습니다.

한일도 없는데, 많은 수고비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곳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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