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의원총회를 통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유 원내대표는 이를 수용해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찍어내기’에 새누리당이 무릎을 꿇은 셈이다. 

새누리당은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를 논의하기 위해 의원총회를 열고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하기로 했다. 의원 투표를 거치느냐에 대한 논의도 있었으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수로 사퇴 권고안을 추인했다. 

의원총회에서는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두고 격론이 오갔다. 당초 30명의 의원들이 발언 신청을 했으나 이후 추가 발언신청이 이어지면서 오전 9시 15분 경 시작한 의원총회는 오후 1시까지 이어졌다.

   
▲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7일 국회에서 자신의 거취 논의를 위해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갈등과 혼란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이제는 결단을 내리고, 모든 일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려놔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또한 “계속 고뇌할 수밖에 없었고, 마음속으로 괴로움도 참 많았다.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오락가락한다’ ‘어정쩡하다’ ‘눈치만 본다’는 등 많은 비판과 비난을 참고 견딘 것도 당의 단합과 화합을 위해서였다”며 “하지만 당 대표로서 당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이제는 결단을 내릴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갈등과 혼란이 계속되면 총선에서 패할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 모두의 공멸”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정치인의 거취는 반드시 옳고 그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을 던지면서 나보다는 당을, 당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당을 위해 희생하는 결단을 부탁하는 것”이라며 사퇴를 요구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당헌당규 8조에 당이 대통령과 정권을 도와야한다는 내용이 있다. 책임지는 것은 불명예가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다”이라고 말했다고 서 최고위원 측이 전했다. 

또한 서 최고위원은 “친박 탄생의 원초를 제공한 것은 전 정권의 친박 공천학살이다. 하지만 (내가) 전 정권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며 “어제는 과거다. 그니까 서로 현 정권에 대해 말 안 하는 게 좋다”는 말도 했다고 서 최고위원 측이 전했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의원총회 전 기자들과 만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러한 사태를 만들어놓고도 사퇴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자체가 사퇴할 이유다. 사퇴해야한다는 걸 강력히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권고를 결정한 8일 의원총회 이후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피해 국회본청을 빠져 나가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반면 정두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미국대통령은 야당 원내대표 불러서 밥 먹으면서 설득하고 그런다. 원내대표 사퇴 결의안, 이런 개콘(개그콘서트) 같은 일을 할 게 아니라 당 지도부와 청와대 대화촉구 결의안 이런 거 좀 주장하고 싶다”며 “대화를 하면 되는데 왜 대화를 안 하나.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의원총회 중간에 나와 기자들에게 “내가 할 말은 어제 페이스북 통해 다 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할 수는 있어도 원내대표를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며 “여당이 정부의 잘못까지 감싸고 대변하는 것응 민주정당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원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여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사퇴 권고안’을 채택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김무성 대표는 의원들에게 “신임투표로 가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 모두가 큰 상처를 입게 된다”며 “그래서 우리 새누리당의 미래와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위한 방안으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키로 했고, 오늘 원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의총에서 의원동지 여러분의 동의를 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태흠 의원은 의원총회 전 기자들에게 “표 대결까지 가는 것은 당내 갈등을 확대시킬 수 있고 후유증 있을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거기까진 안 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의원총회 중간에 나온 신의진 의원은 기자들에게 “표결을 하지 말자는 사람이 더 많다”고 전했다.  

반면 비박계 김용태 의원 등은 “의원들 각각의 뜻이 중요하기에 표결을 통해 의사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표결이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에게 ‘사퇴 권고’를 하는 방식으로 유승민 원내대표가 물러나게 됐다. 김무성 대표가 스스로 ‘옳고 그름에 따라 사퇴하는 게 아니다’고 인정했듯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는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른 대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퇴권고 결의안’이라니, 대통령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부끄럽다.”며 “허수아비 원내대표를 세우느니 차라리 실질적 당 총재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반납하는 것이 어떨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퇴 권고 직후인 오후 1시 25분 경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유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의 뜻을 받들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며 “평소 같았으면 진작에 던졌을 원내대표직을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나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고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며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치 정의를 구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압박이 아니라 의원총회라는 공식절차를 거쳐야 물러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유 원내대표는 또한 “고통받은 국민의 편에 서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보수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했다“며 “그러나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고 밝혔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당의 갈등을 막고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유 원내대표가 사퇴해야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유 원내대표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 대표의 바람과 달리 당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유 원내대표가 임기를 수행했다면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이어가며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이미지를 ‘꼴통보수’가 아닌 개혁보수로 탈색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유 원내대표를 ‘찍어내기’ 하는 식으로 물러나게 하면서, 이러한 새누리당의 ‘박근혜 색깔빼기’ 전략은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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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총선과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과 거리두기하려는 움직임은 빈번해질 것이고,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해 제동을 걸려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새누리당의 혁신 대신 미래권력과 현 권력 간의 갈등만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7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의원들이 선출하고 재신임까지 한 원내대표를 권력의 이름으로 몰아내고도 어떻게 정치혁신을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끝없는 권력투쟁만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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